1 장

도준이 샤워를 하는 사이였다.

탁자 위에 놓인 휴대폰이 진동했다.

무심코 화면을 본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사진 한 장.

젊은 여자의 셀카였다.

메시지가 뒤따라왔다.

[도준 오빠, 생일 선물 정말 고마워요.]

여자는 청순한 인상이었다.

비싼 옷을 입고 있었지만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듯 어딘가 어색한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눈가가 뜨거워졌다.

도준 곁에 다른 여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정말 이상하게도.

이런 사람일 줄은 몰랐다.

가슴 한쪽이 서늘하게 저려왔다.

동시에 깨달았다.

아, 이런 사람이었구나.

도준이 좋아하는 사람은.

그 순간 이상하게 화도 나지 않았다.

그저.

보지 말아야 할 비밀을 들여다본 것 같아 씁쓸할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욕실 문이 열렸다.

도준이 젖은 머리를 대충 털며 걸어 나왔다.

그는 내 손에 들린 휴대폰을 보더니 미간 하나 찌푸리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하게 물었다.

“언제까지 보고 있을 거야?”

휴대폰을 가져간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셔츠 단추를 채우기 시작했다.

당황한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결혼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름이 꽤 알려진 피아니스트였다.

하지만 결혼 후 모든 활동을 접었다.

지금의 나는 경제적으로 철저히 도준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가 이렇게 태연할 수 있는 거겠지.

나는 따지지도 않았다.

싸우지도 않았다.

애초에 그럴 용기조차 없었다.

도준이 외출 준비를 마칠 즈음, 나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도준 씨.”

“응?”

“할 말이 있어.”

그는 벨트를 매던 손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5분.”

시계를 확인한 뒤 덧붙였다.

“기사님 기다리고 계셔.”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는 숨을 고르고 말했다.

“나 다시 일하고 싶어.”

도준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안주머니에서 수표를 꺼냈다.

몇 자 적은 뒤 찢어서 내게 내밀었다.

“돈 부족해?”

“그런 거 아니야.”

“그럼?”

그는 무심하게 말했다.

“집에서 지내는 게 싫어?”

“일하는 건 너랑 안 어울려.”

말을 마친 그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나는 다급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나 진짜 괜찮아.”

“힘든 일도 할 수 있어.”

“나 피아노도 다시 칠 수 있고.”

도준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그의 눈에 비쳐진 나는 늘 남들이 보호해줘야 하는 사람이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온실 속 화초.

고생이라고는 해 본 적 없는 여자.

그래서인지 그는 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도준은 손목시계를 한번 확인했다.

더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듯 현관으로 향했다.

나는 결국 그를 잡지 못했다.

문을 열려는 순간에야 급하게 물었다.

“이번 토요일.”

“우리 아빠 환갑잔치셔.”

도준의 손이 잠깐 멈췄다.

“올 수 있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때 가서 보자.”

여전히 짧은 대답이었다.

곧 문이 닫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 시동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점점 멀어졌다.

나는 한참 동안 현관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몇 분 뒤 가사도우미가 올라왔다.

“사모님.”

“도준 사장님께서 며칠 부산에 다녀오신대요.”

“급한 일정이 생기셨다네요.”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방금 갈아입으신 옷이 왔는데요.”

“세탁소로 보낼까요?”

“아니면 직접 하실래요?”

이 집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우리 부부가 쇼윈도 부부라는 걸.

그래서 가끔은 이렇게 도준의 말을 대신 전해주곤 했다.

나는 소파에 앉아 멍하니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제가 할게요.”

도준은 세탁기 냄새를 질색했다.

그래서 그의 셔츠와 정장은 늘 내가 손빨래를 했다.

다림질도 직접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을 싫어해서 요리를 배웠고,

집 안이 흐트러지는 걸 싫어해서 정리정돈에 집착하게 됐다.

꽃꽂이도 배웠다.

와인도 공부했다.

그가 좋아할 만한 것들은 하나씩 전부 익혔다.

그런데도.

도준은 단 한 번도 나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우리는 고작 단 한 번의 실수로 결혼했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완벽한 아내가 되어 있었다.

내 삶의 중심에는 늘 도준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삶 속에서 나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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